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선 지방자치 30년, 성과와 새로운 길'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헌법으로 지방자치단체 설치 근거를 마련했고 1952년 첫 지방의회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독재 군부세력은 중앙정부 주도형으로 제도를 바꿨다. 독재정권이 보기에 자치보다 관리가 효율적이고 다루기 쉬웠다.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은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았다. 지방은 힘을 잃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다시 지방분권 의제가 대두됐다.
1990년대 들어 지방자치 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석제가 시행됐다. 이 때를 기점으로 지방자치 역사는 다시 흐른다.
올해로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이했다.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선 지방자치 30년, 성과와 새로운 길' 세미나가 열렸다.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균형성장을 진단하고 앞으로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지방자치제 필요하지만. 참여는?
행정안전부는 4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민선 지방자치 30년 평가'를 위탁했다. 연구원은 자치구조·자치역량·참여구조 등 정량적 지표를 토대로 지방분권과 제도 운영 성과를 분석했다.
지방사무 비율이 1994년 13.4%에서 2024년 36.7%까지 상승하는 등 지방의 행정적 자율성이 확대됐다. 지방세 비중도 마찬가지로 늘었다. 1995년 21.2%에서 2023년 24.6%로 나타난다. 그러나 지방 재정자립도(1997년 63%→2024년 48.6%), 재정자주도(2007년 79.5%→2024년 70.9%)는 오히려 낮아졌다.
행정안전부는 정량적 성과와 함께 주민 체감도도 살폈다. 주민·전문가·공무원 인식 조사도 진행했다. 행정안전부는 8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과 17개 시도 공무원, 전문가 등 700명을 대상으로 지방자치제도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지방자치제도 인식 조사 결과 '지방자치제도 필요성'에는 전문가(83%), 공무원(71%), 주민(62%) 대다수가 긍정하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지방자치성과 평가' 문항에서는 아쉬움이 드러났다. 주민 36%, 전문가 50%, 공무원 53%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주민자치회, 주민제안 등 주민참여제도가 생기면서 주민 참여도 늘었다. 주민 48%가 '10년 전과 비교해 지방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증가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실제로 주민참여제도를 이용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주민 14%에 불과했다.
향후 10년간 지방자치에 있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주요 영역은 △지역 경제성장과 고용 안정(84%) △인구감소 대응(82%) △재난 거버넌스 구축 및 대응(77%)으로 나타났다.

향후 10년간 지역의 문제해결을 위해 중요한 전략으로는 △주민의 참여기회 확대(76%) △인구감소상황에서 주민의 기본권 보호(75%) △지역 맞춤형 특화정책 개발(71%) 등이 꼽혔다.




행안부 지방자치제도 인식 조사


지방자치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이날 주재복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민 인식도 조사 분석 결과를 발제했다. 주 연구위원은 "지방자치의 필요성은 확고하지만 성과 체감은 제한적"이라며 "지방자치의 다음 과제는 제도 운영의 가시성과 참여 실질화, 생활체감형 성과 강화로 요약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앙 주도적 인프라 개선은 체감되지만 지역맞춤형 서비스, 성과책임 구조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권역 협력과 자율성 제약 때문에 격차 완화보다 수도권 중심이 강화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 지역 간 격차는 심해지고 입법권에는 구조적 제약이 걸렸다. 권역 협치의 실행력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행정 운영도 자율적이지 못했다. 정치 참여의 질은 떨어지고 책임에는 공백이 생겼다.
주 연구위원은 재정분권 강화와 자율 재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성과 기반 교부제, 권역 단위 공동재정 체계 구축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지방의회 입법역량을 키우고, 정책개발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역맞춤형 조례 권한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의견이다.
실효성 있는 거버넌스와 함께 초광역·권역 단위 공동 기금, 연합 사업 체계 구축도 과제로 남았다. 현행 지방재정제도를 지방 중심으로 개편하고, 지자체의 인사와 조직 자율성을 확대한다면 행정 운영의 자율성도 키울 수 있다. 참여와 정책 성과가 환류 체계를 구축하는 안도 제시됐다.
지역소멸,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방자치가 위축되면 인구소멸이 앞당겨진다. 지역소멸에 대응하려면 지방자치가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지방자치의 진보에는 재원이 필수적이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은 '인구구조 변화를 반영한 지방재정 전망과 대응전략'을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재정분권은 지방자치를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지방재정은 그동안 양적으로는 팽창했다. 국민부담률은 커졌고, 국세외 지방세가 이양되면서 지방세 부담비율이 상승했다. 그러나 재정자립도는 2000년 59.6%에서 2024년 48.6%로 줄었다. 특히 권역별 거점도시로 기능해야 할 부산, 대구, 울산 등 재정자립도가 도 단위 광역자치단체보다 더 크게 하락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원은 거점 성장보다는 낙후지역 지원을 우선시한 정책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오히려 지역 거점도시의 중앙정부 의존도가 심화되고 지자체 재정 책임성과 혁신 역량은 악화됐다.
권역별 인구나 경제력 지표에서 동남권은 하락세가 뚜렷했다. 수도권을 둘러싼 비수도권 지역만 덩치를 키워갔다. 권역별 차등화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이뤄진 보조금 배분도 문제였다. 균형발전특별회계는 지역 간 격차 완화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수도권 예산 비중이 크게 늘었다.
앞으로 지방재정 세입 부족액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2030년 8조 8000억 원에서 2052년에는 24조 3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52년 인구 1인당 재정부족액은 전국 평균 약 53만 원으로 예측된다. 경남은 131만 원으로 전남(149만 원), 전북(135만 원), 경북(134만 원)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1인당 재정부족액이 높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연구원은 "재정분권은 전국 평균이 아니라 지역 거점도시의 분권 역량 강화를 목표로 추진돼야 한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재정 책무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지역성장 예산과 복지사업성 예산의 주머니를 분리하고, 균형발전특별회계는 인구와 경쟁력이 하락하고 지역 거점도시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는 동남권과 서남권의 광역시에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라며 "지방소멸지역과 낙후지역 등 구분 체계의 실효성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